2017년 6월 8일 오전 파주시 와동동 소재 가람도서관에서 만난 이종창 관장(51)은 "1987년 6월을 잘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생각하면 힘드니까 정리가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쓰러진 한열이를 보고는 안전한 데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고 합니다.
이종창 관장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 이한열 열사(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년)의 죽음 당시 최루탄 직격탄에 맞아 쓰러진 이 열사를 부축한 같은 학교 도서관학과의 동갑내기 학생이었다. 이 관장에 따르면 1987년 6월9일은 유난히 쾌청한 날이었다. 서울 신촌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 집회에는 300~400명의 학생이 모였다. 하루 뒤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여는 ‘6·10 국민대회’(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집회였다고 합니다.
스크럼을 짜고 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고 맨 앞의 '소크조'(뒤의 집회행렬을 보호하고 도망치는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는 조)에 속한 남학생들이 정문 밖에 흩어서자 마자 일제히 최루탄 수십 발이 발사됐다.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고 바로 사람을 조준하다시피 해서 쏜 것이었다고 하네요!
이종창 관장은 당시 한 치 앞도 안 보이게 자욱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누군가 쓰러진 것을 직감하고는 뛰어가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바닥에 쓰러진 이한열 열사를 발견하고 처음에는 팔을 붙잡고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이한열은 힘을 내지 못했습니다.
이한열을 안다시피 일으킨 그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어가는 이한열의 모습은 한 장의 사진으로 인화되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로이터통신 기자가 찍은 이 사진 속 피 흘리는 젊은 청년의 모습, 부축한 이의 막막한 눈길은 독재정권의 폭압에 희생된 순수한 젊은이의 모습을 바로 보여주면서 보는 이들의 가슴에 '화인'(火印)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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